자유롭게~

[감상후기]희망다큐 프로젝트 5탄 <길>

독사수필 2009. 5. 14. 11:11

 

인사회와 알라딘이 함께 하는 희망다큐 프로젝트 제5탄! <길>

▶감독 : 안준호   

▶상영관:인디스페이스(구 중앙극장)

 

영화는 할아버지가 피를 뽑는 논에서 시작한다.

프롤로그 격인 이 장면은 대단히 의미심장하다.

 

“이게(피) 요기 하나 나잖아? 그럼 이것까지 다 차지해, 이놈(벼)이 나중에 죽어.”

농부의 말을 카메라는 쉽사리 이해하지 못한다. “세니까 그래. 조금만 빌려달라 그래도 빌려주지 말아야 하는 건데. 이건 옛날 말인데 조금만 빌려주면 다 차지하려 든다니께...”

이쯤되면 누가 '피'이고 누가 '벼'인지 쉽게 짐작이 간다.

 

이렇듯 영화는 '영화적 재미'로 활용될 법한 무서운 경찰들과 군인들의 폭력성이라든가 외부자인 '지킴이'들의 시선, 또는 반미 구호 하나 등장시키지 않고 방 할아버지의

천진난만한, 그러나 진실된 시선과 입을 통해서만 메시지를 전달한다. 생각보다 훨씬 담담하고 때론 심지어 유쾌하기까지 하다.

 

미군기지 확대 이전으로 하루아침에 누대에 걸쳐 일궈 온 터전을 잃어버린

평택 대추리 주민,방효태 할아버지는 늘 논에 있었다. 비가 오는 날에도 쟁쨍하게 맑은 날에도, '행정 대집행'이 있던 그날도...

 

가장 평화로운 공간에 가장 폭력적인 공간이 들어서는 이 역설적 아이러니 속에서 주민들은 당황한다.

씨를 뿌리고 모를 심은 들판을 어느 날 철조망이 가로지를 때도, 접근금지의 살벌한 표지판이 농로를 가로막을 때도

할아버지는 묵묵히 고된 삽질로 경운기가 지나갈 농로길을 확보한다. 이게 ""이다.

"에라이~ 쳐먹고 할 일이 없어서 길을 없애냐! 자식한티는 못가봐도 논에는 가봐야 하거등~"

 

"저놈들이 목을 죄어도 소용읎어~ 아무리 몰아붙여도 못나가. 아, 갈 데가 있어야지..."

그러나 3년에 걸친 오랜 싸움끝에 결국 주민대책위는 집단 이주를 결정한다.

철책이 둘러쳐진 황량한 들판은 죽은듯 말이 없고 그 죽은 땅에서도 새들은 날아오른다.

강제 철거로 폐허가 된 마을과 학교 교정엔  팔 잘린 아이 동상에 동여진 빛바랜 머리띠만 힘없이 펄럭인다.

 

2007년 3월 24일, 마지막 촛불 행사.

결국 촛불은 꺼졌고 할매들의 두 볼엔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모진 세월을 지내온 대추리에도 어김없이 봄은 왔고 목련은 흐드러졌다.

이삿짐과 농부들의 한을 실은 트럭이 마을을 떠나던 날 진눈깨비가 내렸고

미군 비행기들의 굉음 사이로 다시 새떼는 날아오른다.

 

칠십 몇 분을 주민들의 발걸음과 시선을 따라 어지러이 요동치던 카메라는

에필로그에서 결국 고정된다. 감독은 카메라를 바닥에 내려놓고 피를 뽑는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엔 기본적인 게 있다고. 그게 정의 아니겄어?"라는

방 할아버지의 심지에 대한 경의의 표시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