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책소식

우리가 살아온 집, 우리가 살아갈 집

독사수필 2007. 9. 11. 09:45
지은이
출판사
역사비평사
출간일
2007년 9월 7일
장르
역사(문화사), 예술(건축)
책 속으로

제1장  육중한 대문 안에 아자살 용자살 창호를 달아

문과 창의 구별이 없이 하나의 구멍이 그 역할을 수행하던 움집은 거적이 유일한 가리개 역할을 했다. 삼국시대로 들어와 건축재료가 흙과 나무로 바뀌면서 나무판자로 된 판문, 나무살을 촘촘히 박은 살창이 등장한다. 전통건축의 미의식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창호지문은 고려시대부터 등장하여 조선시대에는 서민층까지 널리 보급되었는데 출입과 채광, 통풍의 기능을 따로 구분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제2장  커지는 사랑채, 작아지는 안채

주거 공간과 생산 공간이 합쳐진 직주혼합 공간인 전통건축 중에서도 ‘사랑채’는 주목할 만한 요소이다. 조선 초기에는 살림채 한구석에 딸린 방(‘사랑방’)에 불과했던 그 공간이 조선 중기 이후부터 독립된 별채로 등장했고 후기에 와서는 생산 공간인 안채보다 더욱 크고 넓어졌다. 부농계급이 성장한 조선 후기에는 부를 과시하기 위한 경쟁이 일어나 사대부 주택의 특징이던 사랑채 건축이 도처에 난립하고 안채에도 별도의 안사랑채가 세워지기에 이른다.

 

제3장  홑집에서 겹집으로

一자형의 초가삼간 형태를 홑집이라 하고 기후적인 요인으로 인해 주로 중부와 남부에서 찾아볼 수 있다. 또한 ㅁ자형의 집을 겹집이라 하는데 고구려시대부터 생겨난 주거 건축이며 강원도와 함경도에 주로 세워졌다. 특히 20세기에 들어와 서울의 북촌 등지에 빈번히 지어졌던 개량 한옥이나 오늘날 아파트의 동선 구조에서 ㅁ자형 겹집과 유사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제4장 가가 허느쇼오, 가가 도로 지이쇼오

조선 후기에 들어와 급격하게 일어난 사회경제적 변화가 주택 양식에도 영향을 미쳤다. 화폐유통과 전국적인 물류 유통망이 완비되었고 임금노동이라는 새로운 노동 형태 속에서 한강변 포구들이 상업 중심지로 발달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전까지는 보지 못했던 객주와 여각, 가가(假家) 등의 새로운 상업 건물이 출현하게 된다.

 

제5장  한양은 지는 해요, 화성은 뜨는 해라

18세기 한양의 급격한 인구 유입으로 많은 문제점이 발생하자 정조는 인구 분산을 위해 새로운 주거 지역을 구상한다. 정조의 명으로 세워진 화성은 우리나라 최초로 계획된 자급자족 상업도시였다. 그 이전까지 조선에서는 정치적 유교질서나 철학적 사유에 의해 구현되어온 행정도시만이 존재했다. 엄밀히 말해 ‘도시’가 아닌 ‘도성’이나 ‘도읍’일 뿐이었으나, 화성은 최초의 상업도시이자 계획도시였고 또한 최초의 수도권 주변의 신도시였다.

 

제6장  상것들과는 함부로 어울릴 수 없으니

씨족마을은 흔히 우리나라의 유구한 전통으로 알려져 있으나 대부분 임진왜란 이후 2백 년 사이에 창설된 것들로서, 조선 후기에 들어와 흔들리는 신분제와 심화되는 양반 사회 내부에서의 갈등, 그로 인해 위협받는 경제적 기반 등으로 크게 위기의식을 느낀 양반들이 은신처로 숨어들어 그들만의 소왕국을 건설한 것이 성립 이유이다. 오늘날에도 대단지 아파트의 내부 구성이나, 고급 아파트 단지, 비슷한 사회 계층이 모여 사는 전원주택 등에서 조선시대의 씨족마을과 유사한 면모를 찾을 수 있다.

 

제7장  피지 못한 꽃, 지어지지 못한 집

볏짚을 이용한 초가지붕과 흙벽, 자연석 온돌 등은 현대인들에게 전통건축의 자연친화적 면모를 상징하는 것들이지만 조선 후기 당시에는 경제적 낭비가 심하고 산림의 남벌, 화재 위험, 수해 위험 등으로 인해 불편하고 문제점이 많은 주거 건축으로 여겨졌다. 실학자들은 벽돌을 구워 벽을 쌓고 기와로 지붕을 잇고 중국식 이중 온돌인 복요로 온돌제도 자체를 바꿀 것을 주장하기도 했다. 또한 실학자들의 중상주의 정책과 맞물려 건축자재의 규격화, 상품화 움직임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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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경험도 추억이 되고 보면 모든 것이 아름답게 치장되듯, 모든 역사와 문화도 과거의 것이 되면 무조건 찬사의 대상이 되는 경향이 있다. 일례로 전국의 종가와 고건축을 답사한 뒤 적어놓은 사진 설명글과 감상문을 보면, 옛 사람들은 지혜롭고 선량했던 반면 현대인들은 어리석고 이기적이라는 논리가 은연중 깔려 있다. 그러나 옛 사람들이 구부러진 나무로 집을 지은 것은 선량하고 지혜로웠기 때문이 아니라 그 상황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며, 현대인들이 콘크리트를 사용하여 고층건물을 짓는 것은 어리석고 이기적이어서가 아닌 지금 상황에서 그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